[구혜영의 이면]총선이 지운 이름 ‘민주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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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200회 작성일 24-04-29 11:58본문
윤석열 대통령은 참패 성적표를 받아들고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고도의 정치를 하는 자리가 대통령인데 정치를 하겠다니 무슨 소리인가. 만시지탄이지만 그간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자성일 수 있겠다. 실제 윤 대통령 집권 2년은 무능, 오만, 편향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총선 결과는 정치를 하지 않은 대통령에 대한 매서운 질책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국정 메시지를 쉽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황스럽다. 쉽든 어렵든 소통의 내용이 잘못됐고, 국정기조를 안 바꾸면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게 총선 민심이다. 윤 대통령 반응은 이를 알고도 무시하거나, ‘윤석열 사태’에 준하는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윤 대통령은 ‘야당과의 소통’도 정치하는 대통령이 할 일로 꼽았다. 집권 당시 여소야대와 달리 지금은 윤 대통령이 만든 여소야대다. 여당은 21대 총선에 견줘 5석이 늘었지만 실질적 지표는 악화됐다. 개헌·탄핵 저지선을 겨우 넘긴 수준이고, 대통령은 여당을 장악하는 힘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 느닷없이 ‘박영선 국무총리 후보설’이 흘러나왔다. 윤 대통령이 박 전 장관을 총리로 임명하고 싶다면 야당의 양해를 구하고 거국내각 수준의 협조를 요청하는 게 우선이다. 친분 있는 야당 인사를 중용해 협치 모양새를 만들고, 이를 야당이 받으면 다행이고 받지 않으면 야당 탓 할 수 있다 생각했던 모양이다. 윤 대통령은 또, 집권 후 처음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회담을 제안했다. 잘한 결정이다. 하지만 만나기만 한다고 소통, 협치가 되는 건 아니다. 이번 회담은 정치 복원 신호탄이자 정치의 효용을 확인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모든 의제를 열어놓고, 이 대표 말을 많이 듣겠다고 한다. 이런 방식은 대통령 지지율이 높거나 신뢰관계가 두터워야 가능하다. 지금이 그런 때인가. 회담이 총선 참패 위기를 모면하려는 반짝 이벤트가 아니라면 윤 대통령이 합의 가능한 의제 설정에 적극 나서야 하고, 필요하다면 지지층을 설득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채 상병 특검, 의·정 갈등부터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당 득표율 차(5.4%포인트)는 4년 전 총선에 견줘 3%포인트 줄었다. 민주당은 조국혁신당의 지민비조 덕을 톡톡히 누렸다. 169석으로 원내 1당을 굳힌 민주당이 자력 승리라 착각하면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민주당은 인스타 팔로워 예상 경로를 이탈하고 있다. 총선에서 이기고도 지도부 총사퇴라는 납득 불가 상황이 발생했고 새 지도부는 주류 단일 대오로 채워졌다. 이재명 대표 연임 논란이 국회의장 경선전까지 번지고 있고, 협치는 없다는 반정치 메시지가 커지고 있다. 하나같이 총선 민심을 받드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
특히 조국혁신당은 민주당 진로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총선 결과, 호남에서 민주당은 조국혁신당에 밀렸다. 호남 표심은 민주당에 대한 채찍질이라기보다 조국혁신당을 대체재로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민주당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강성 지지층 목소리만 듣고, 당내 이견을 봉쇄할 경우 조국혁신당이 반명·비명 그룹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벌써부터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면·복권설이 나오고 있고, 민주당 일부 인사들의 입당 문의도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총선 때 약속한 교섭단체 기준 완화를 백지화할 기세다. 당 안팎 통합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것, 이 역시 총선 민심에 대한 역행이다.
아직 총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헛헛하다고 한다. 주권자인 내가 투표권을 가진 정치 고객이었을 뿐 민주시민으로 대접받지 못해서라면 가혹한 생각일까. 견고한 진보주의자 홍세화 선생이 18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배제된 자들과 민주시민의 간극을 줄이는 데 평생을 걸었다. 그가 품었던 ‘우리가 싸우는 과정 자체가 그 싸움을 통해 획득하려는 사회와 닮아야 한다’는 말을 되새긴다. 주권자를 민주시민 자리에서 내몬 지금 정치가 답해야 할 질문이고 기꺼이 감당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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