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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점선면] 일단 묻고 지하로 가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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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38회 작성일 24-03-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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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점선면 3월5일자(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단 하나의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 클릭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너도나도 철도 지하화
·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들이 경쟁하듯 ‘철도 지하화’ 공약을 발표했어요.
· 각 정당은 지하화할 노선도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국민의힘: 수원역~성균관대역, 영등포역~용산역, 대전역 인근
더불어민주당: 구로역~인천역, 서울역~수색역, 청량리역~의정부역
· 철도 지하화가 필요한 이유로는 소음, 분진, 지역 간 단절, 상습 정체 발생 등을 들고 있어요.
‘경의선숲길’이라는 환상
한동훈 국민의힘 인스타 팔로워 비상대책위원장은 철도 지하화 공약을 발표할 때 이런 말을 했어요. 육교와 철도 부분이 덮이고 공원, 산책로, 맨해튼 스카이라인 같은 것이 생긴다 생각해보자.
정말 한번 생각해볼까요? 아마 서울이 생활권인 독자님은 떠오르는 장소가 있을 것 같아요. 많은 언론이 용산, 공덕, 홍대, 연남을 지나는 경의선숲길을 거론합니다. 2012~2016년 지상철로인 경의선 6.3km 구간을 지하화하고, 그 위에 공원을 조성했죠. 젊은 층이 즐겨 찾는 연남동 구간은 ‘연트럴파크(연남+센트럴파크)’라고도 불려요. 가늘고 긴 공원을 따라 들어선 카페 등 상업공간이 인기를 얻었고, 소음이 사라지면서 주변 거주환경이 한결 더 나아졌죠.
이번 점선면 주제를 예고했을 때도 많은 독자님께서 철도를 지하화하고 ‘경의선숲길 같은 공간’(salight님), ‘시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이나 녹지 공원’(새말님), ‘산책로, 공원, 자전거 길’(레드벨님),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녹색 공간’(매꼴님)을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내주셨어요.
하지만 뜻밖에도 지금 철도 지하화를 약속하는 정치인들은 경의선숲길이란 ‘좋은 예’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경의선숲길은 요즘 말하는 철도 지하화의 모델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에요.
문제는 ‘돈’입니다. 여야 모두 철도 지하화에 정부 예산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땅 파면 돈 나오냐는데, 그럼 무슨 돈으로 공사를 할까요? 정치인들은 ‘민자 유치’로 된다고 합니다. 민간 건설업체를 끌어들여 원래 철도가 있던 자리에 아파트나 오피스를 지어서 팔면 지하화 공사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거예요.
철로를 땅 밑에 묻고 그 위를 공원으로 ‘비우는’ 개발이 아니라, 건물을 지어서 ‘채우는’ 개발을 하자는 겁니다. 경의선숲길과는 아주 다른 모델입니다. 관련 특별법 역시 이 같은 개발 방식을 촉진하자는 취지로 제정됐습니다.
이렇게 개발하면 그 지역에는 건물이 더 많이 생겨 밀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민간 건설업체는 아무래도 수익을 안정적으로 챙기기 위해 아파트 등 주택을 지으려고 할 겁니다. 도로 지하화를 통한 주택 공급은 오히려 해당 지역의 교통난을 심화하고 정주여건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에요.
그냥 경의선숲길처럼 공원을 만드는 지하화를 할 수는 없을까요? 그럼 ‘들어가는 돈’(지하화 공사비+공원 조성비)만 있고, ‘나오는 돈’은 없게 됩니다. 공원 입장료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경의선숲길 조성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당시엔 ‘철로가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경의선 지하화는 기존 철로가 한 개뿐이었던 ‘단선’을 철로가 두 개인 ‘복선’으로 만들 필요성 때문에 시작됐어요. 철로가 늘면 그만큼 사람과 물자를 더 많이 나를 수 있게 됩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경의선 지하화 공사에 약 4300억원을 들였는데, 복선화로 노선의 경제성이 커지는 만큼 투자할 근거가 있었습니다.
반면 지금 정치권은 노선의 경제성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그저 그 노선을 땅 밑에 묻는 공사만 벌이려고 합니다. 정부 예산을 들이지 않고 공사비를 충당하려다 보니 자칫 도시를 과밀하게 만들 수 있는 개발 방식을 동원하는 거죠.
1. 지하화란 ‘오래된 미래’
현대 인류가 지하화의 미래를 꿈꾼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20세기 건축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건축가·도시계획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가 1920년대 발표한 계획안 <빛나는 도시>를 보면, 차량은 모두 지하로 내려보내고 지상은 오로지 고층 아파트와 푸른 숲, 보행자로 채운 도시를 그렸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미래를 구상한 이 이미지는 당시 큰 반향을 불렀고, 지금까지 많은 토목·건축 종사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르 코르뷔지에가 <빛나는 도시>를 제안했을 무렵, 유럽에서는 세계대전을 거치며 황폐화한 도시를 재건하는 문제가 화두였습니다. 도시가 ‘백지’에 가까운 상태였으므로 르 코르뷔지에의 파격적인 제안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죠.
하지만, 오늘날의 도시는 다릅니다. 일단 20세기 초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합니다. 게다가 서울이 1950년대 불과 인구 170만명의 도시에서 반세기 만에 1000만명의 도시가 되었듯, 한국의 도시는 단기간에 번성하며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졌어요.
그 과정에서 철로 건설 비용은 아끼되 건설 속도는 높이려고 지하를 파는 대신 기존 지상철로를 확장하거나, 새 지상철로를 놓는 경우가 적지 않았죠. 압축성장기를 보낸 서울 같은 도시에서 얽히고설킨 지상철로는 거부하려야 거부할 수 없는 현실적 조건입니다.
이런 도시에선 지상철로를 둘러싼 이해관계도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상철로 소음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도 분명히 있지만, 철도 지하화가 지가 상승 등 파장을 일으켜 삶이 흔들릴 사람도 있습니다. 경의선숲길을 만들자 그 주변이 고가 아파트로 개발되면서 세입자 등 서민의 주거지가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났어요. 한 공기업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나마 사업성이 있는 서울 지상 철도 구역도 폭이 좁은 길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개발이익이 남기 위해선 철도 주변 땅을 사들여 통합 개발을 추진해야 하지만, 보상이나 협상 자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하로 들어간 차량, 지상에 들어찬 건물…. 르 코르뷔지에의 사상은 아주 명쾌했습니다. 하지만 더는 백지가 아닌 도시에서는 이상에 불과합니다. 도시의 복잡한 조건을 존중하는 데서 모든 논의가 출발해야 합니다.
2. 정치의 본질을 생각할 때
경제학자 우석훈은 최근 ‘지하화 열풍’을 보며 이렇게 지적합니다.
지하화는 없던 도로나 철도가 새로 놓이는 게 아니라서 추가적 수요가 많이 생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지상 도로 등 기존 시설보다 관리비는 증가해 편익은 별로 안 늘고 비용은 꽤 높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 주민 숙원 실현, 주민 불편 해소 등의 이유를 들지만,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을 정치적 결단으로 대신하려는 게 지하화 사업의 정치적 속성이다.
시민을 위한 정치적 결단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치는 선거에서 유불리를 따지는 행위만은 아닙니다. 어떤 정책으로 이익을 볼 집단이 명확하다고 해서 곧바로 그 정책을 집행할 근거를 갖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정된 재원 안에서 여러 정책을 두고 우선순위를 따져봐야 하죠. ‘이만한 비용을 들여서 해야 할 정도로 시급한 일인가?’란 물음도 필요합니다.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철도·도로 지하화에 65조원이 소요된다고 예측했습니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이 약 650조원이므로 65조원은 10% 정도 되는 큰 금액입니다. 정부·공기업·민간기업 등 어느 영역에서든 이 정도 돈을 동원하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인데, 그것을 꼭 지하화 사업에 투입해야 할까요? 그것도 선거 국면에서 정치권이 경쟁하듯 쏟아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하화는 단지 ‘시끄럽다’, ‘보기에 좋지 않다’, ‘지역을 가른다’ 등과 같은 당위만으로 결단하기엔 투입하는 자원의 규모가 매우 큰 사업입니다.
우석훈은 위의 글에서 바로 뒤이어 이렇게 썼습니다. (프랑스) 파리가 새 도로와 교통 인프라 건설 대신 대형 SUV 주차료를 높이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그 돈만큼 복지 지출을 늘릴 여력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차량 정체를 풀자는 목표는 같지만 해법은 다릅니다. 파리는 주차료 인상으로 차량의 수를 줄이는 방향을, 서울은 지하 고속도로를 만들어 도로의 양을 늘리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기후변화 시대, 탄소중립이란 목표에도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과연 어느 쪽이 더 나은 방향일까요?
지금 선거 앞에서 난무하는 약속들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란 고민, 즉 정치 본연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3. 또, 수도권 중심주의
도시학자인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꼭 4년 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개발공약 감별법>이란 글을 썼습니다. 정 교수는 이 글에서 땅속 깊이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를 뚫자는 주장과 고속도로나 철도의 지하화 주장, 그 위를 덮어 덮개공원을 만들자는 주장이 ‘대도시 개발공약의 단골 메뉴’라면서 속지 말자고 당부했어요.
철도·도로 지하화 요구는 2000년대를 전후해 본격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의선, 분당선, 수인선, 경인선, 경부고속철도(KTX), 공항철도 등이 여러 노선이 지하화 요구에 직면했습니다. 교통평론가 한우진은 당시 정부 포털인 <국정브리핑>에 기고한 글에서 그전에는 지하화 문제가 없었을까?라고 묻고 이렇게 답합니다.
사실 수도권 전철의 첫 개통 때만 해도, 경인선과 경부선의 연선이 현재와 같이 많이 개발되지는 않았다. 전철역 수는 현재의 절반 이하였으며, 전철을 타고 인천이나 수원을 가는 동안 전철 창밖으로 벼가 자라는 논이나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염소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선 전철이 들어오자 지역발전이 시작되고 철도 연선 주변이 빽빽하게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전철이 있었기 때문에 지하화 민원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철로를 놓는 것 자체가 그 지역에 대한 큰 투자였고, 그 투자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그 지역 발전의 원천이 됐습니다. 이제와서 소음 등 문제를 근거로 한 지하화는 어쩌면 이미 혜택 받은 지역에 대한 ‘중복투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보다 교통환경이 더 열악한 지역의 시각에서 본다면 말입니다. 더군다나 그렇게 ‘또’ 인스타 팔로워 혜택을 받을 지역은 대부분 수도권에 모여있습니다. 여야 대표가 철도 지하화 공약을 발표한 곳은 각각 경기 수원역과 서울 신도림역이었어요.
우석훈은 한정된 자원을 투입할 곳이 ‘복지냐 토건이냐’를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에는 ‘수도권이냐 지방이냐’란 질문 역시 필요하지 않을까요?
#128311;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철도 지하화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경부선·경인선 등 지하화 대상 노선을 구체적으로 거론했습니다.
#128311; 지금 거론되는 철도 지하화는 철도를 땅 밑에 묻고 그 위를 공원으로 ‘비우는’ 개발이 아니라 건물로 ‘채우는’ 방식이어서 도시를 과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128311; 정부가 예측한 지하화 사업 예산은 약 65조원. 한 해 국가 예산의 10%에 이르는 큰 돈을 어느 분야에, 어느 지역에 쓸 것인지 진지하게 다루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글에 첨부한 링크와 추천 기사를 모두 보시려면 뉴스레터 점선면 원본( 확인해 주세요. 매주 월~금요일 오전 7시 메일함에서 점선면을 보시려면 여기(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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