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13) 강화 초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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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97회 작성일 24-03-11 07:56본문
강화는 한강 입구이므로, 강화가 뚫리면 한양을 막을 수 없어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강화 초지진은 지어진 지 200년이 넘은 고종 때가 되어 역사에 기록되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의 해병대가 이곳을 점령했고, 1875년 일본의 운요호에 의해 파괴되었다. 운요호와의 교전은 다음해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로 귀착되었고, ‘문호 개방’으로 초지진은 할 일이 없어져 파괴된 상태 그대로 방치되었다.
사진은 초지진의 출입문 쪽이다. 1971년 사진은 파괴된 후 돌보지 않아 허물어진 모습인데, 성벽 일부와 돈대 터만 보인다. 1973년 보수 공사를 했지만, 조선시대 때의 원래 규모를 복원하지 못하고 돈대 일부만 살렸을 뿐이다. 2024년 사진은 그 복원된 돈대 중 출입구 쪽만을 보여준다.
초지진의 교훈으로 많은 이들이 부국강병의 필요성, 죽음을 불사한 조선 병사들의 의기를 말한다. 하지만 초지진은 제국주의 시대에 제국에 의해 벌어진 전쟁의 참상을 보여줄 뿐이다. 신미양요 때 미 해병대의 점령을 묘사한 미군 측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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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3명 전사에 부상 10명, 조선군은 전사 243명에 포로 20명. (…) 흰옷의 조선군 시체들이 널려 있는 인스타 팔로워 구매 모습이 처참하다. (…) 바다에 100여 시신이 떠 있고 진홍색 핏줄기가 그어졌다. 조선의 애국자들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군사력의 강화로 과거의 패배를 미래의 승리로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전쟁의 세계에 영원한 승리는 없다. 서로 쌓아올리는 무기의 탑 앞에 모두는 패배자다. 칸트는 일찍이 각국이 군사적 주권을 양도함으로써 형성되는 세계공화국을 꿈꿨다. 영구적 평화는 자본과 국가를 지양하는 지구적 연합체(global association)의 형성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누구는 몽상이라 얘기하겠지만, 인간은 항상 꿈을 실현해 온 존재 아닌가? 초지진을 보며 오늘도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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