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는 기업사냥꾼? [세상의 모든 기업: 삼성물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행복한 댓글 0건 조회 175회 작성일 24-03-15 11:43본문
국내 상장사의 주가가 낮게 형성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 기업으로 삼성물산이 거론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이사회는 자사 주식의 가치를 낮게 산정하고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합병하는 방식에 찬성표를 던졌다.
제일모직 지분만 갖고 있던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통합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다만 기존 삼성물산 주주들은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으로 큰 손실을 봤다.
통합 삼성물산은 수익 분배에 인색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박종렬 흥국증권 수석연구위원에 따르면, 삼성물산의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으로 나가는 비율)은 2019년~2021년 평균 34.0% 수준이었으나, 2022~2023년 배당성향은 15.0% 수준으로 낮아졌다. 삼성물산의 주가순자산비율(PBR)도 상당 기간 1을 밑돌았다. 삼성물산의 주가가 실제 장부가치보다 낮게 평가된다는 뜻이다.
다만 최근 삼성물산 주총(오는 3월 15일)을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주 제안에 나서면서 삼성물산의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시티오브런던 등 행동주의 펀드 5곳은 삼성물산에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 등을 제안했고, 또 다른 행동주의 펀드인 팰리서 캐피탈은 삼성물산에 지주사 전환, 신사업 투자 확대 등을 촉구했다. 이에 한동안 11만원대 수준에 그쳤던 삼성물산의 주가는 지난달 17만원까지 올랐다. 주가가 17만원대를 기록한 건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한 2015년 9월 이후 8년 5개월 만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상징인 삼성물산을 행동주의 펀드들이 변화시킬 수 있을까. 대주주인 총수 일가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지금의 후진적인 거버넌스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중시하는 보다 선진적인 거버넌스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에 일각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배당을 요구하며 단물만 빼먹다가 단기적인 주가 상승으로 인한 차익만 보고 빠져나갈 것이라는, 소위 ‘먹튀’ 우려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자본시장의 요구는 다분히 단기적이며, 이에 기업이 단기적으로 주주들에게 휘둘리는 부작용은 있다면서도 다만 (주주 환원이 취약한) 한국에서는 이 같은 민간의 토대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이번 주총 시즌에 주주들의 여러 요구가 있잖아요. 그중에는 무리한 것도, 정당한 요구인 것도 있는데 (주주들의 요구가 늘어나는) 이런 변화에 대한 수용이 중요합니다. 투자자로서 그런 변화는 좋은 변화예요. 시장의 플레이어와 문화, 주주권에 대한 태도 같은 것들이 수반돼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가능합니다. 기업에 본질적인 이해를 가진 주주가 나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돼야 합니다. (경향신문 유튜브 경향티비 2월 24일 김학균 센터장편)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들이 최근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행동주의 펀드들은 왜 더이상 적대적이지 않은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표적인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 칼 아이컨 등이 예전과 달리 온건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썼다. FT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많은 행동주의자가 온건한 전략을 고려하는 것은 공격적인 방식을 싫어하는 투자자를 설득하고 그들로부터 더 많은 자금을 인스타 팔로워 유치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기존에는 ‘기업사냥’ 등 공격적인 방식을 활용했다면, 이제는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의제를 선정하고 온건한 전략을 구사하려는 행동주의 펀드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최웅필 에이펙스 자산운용 대표도 기업은 과거에 비해 대화의 창구를 넓혔고, 행동주의 투자자는 절제를 익혔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행동주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다.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 왔기에 행동주의 투자자에 따라 추구하는 바나 행동 양식이 다르다. 행동주의 투자자가 개입했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행동주의냐가 중요하다. (오웬 워커의 책 <이사회로 들어간 투자자> 한국어판 추천사 중)
협력적인 행동주의 펀드의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MS) 이사회에 합류한 밸류액트. 당시 MS는 윈도와 MS 오피스 등 PC용 소프트웨어 판매에 주력했지만, PC 판매량이 줄면서 타격을 입었다. 모바일용 운영체제(OS)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발머가 망해가던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부를 높은 가격에 인수키로 한 것도 당시 MS의 중대한 실책으로 꼽힌다.
이즈음 MS의 지분 1% 밖에 없던 밸류액트라는 행동주의 펀드가 MS의 개선점 등을 지적하고 MS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하는데 주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주총장 표 대결을 우려한 MS는 밸류액트에 이사회 의석 1석을 주기로 하고 밸류액트의 의견을 수용한다. 밸류액트는 사티아 나델라가 차기 CEO로 선임되는 과정에 관여하고, MS가 노키아에서 손을 떼고 클라우드와 기업용 제품에 역량을 집중하도록 조언했다. 스티브 발머 시절 MS의 주가는 주당 20달러 수준이었지만, 사티아 나델라 CEO의 MS 주가는 현재 주당 400달러를 웃돌고 있다.
삼성물산에 주주제안을 한 행동주의 펀드들은 어떤 방식의 행동주의 전략을 택할까. 그들의 투자 전략이 주주와 기업에 모두 이익이 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같은 주주 행동주의 물결이 거세질수록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일반 주주들이 의사와 이익이 반영되는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경향신문 공식 유튜브 채널 ‘경향티비’의 <세상의 모든 기업>에서는 삼성물산과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인스타 팔로워 들을 수 있다. 경향티비 <세상의 모든 기업: 삼성물산> 영상 링크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